박연준 「그릇」
면벽수행 생존 일기

알 수 없지

가득 찬 허기란 게 얼마나 묵직한지

 

한때는 액체들의 이동수단

흐르는 키스들의 보관함이었지

입술을 통과해야 도착하는 키스들

 

다섯갈래로 흩어지는 적요가 몸을 감싸고

공기와 먼지,

그늘이 쌓이면

빈방을 채우는 무음들

 

시간은 바깥에서 미끄러진다

 

깨지지 못한 자의 비애랄까

제대로 죽기 전, 죽음에도 실패한 당혹

이 빠진 그릇이란

끝내 아무것도 적시지 못하는 자의 얼굴,

얼굴 위를 기어가는 금[線]

 

죽기 일주일 전

당신은 이가 네개 부러졌다고 했지

나는 모르는 척했지만

 

일주일을 더 살다 당신이 아주,

갔을 때

한동안 아무것도

 

아무것도 마시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