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미린「희미한 환생」
면벽수행 생존 일기

두 눈을 감고 밤의 형태를 기억하고 있었어

 

기억과 생동

 

한낮에 생각하면

나는 어두운 기억을

착각한 적이 없는 것 같아

 

작은 어둠의 미래라는 것이 있다면

이런 것이지 않을까 해

 

하얀 돌계단을 지나

계단의 하얀 돌에 머무르는 것

 

돌에 묻은 슬픔을

안개에 씻고 싶어서

정말 그렇게 하는 것

 

오래전 정해진 기억이

생동하고

 

구름도

구름이 되기 위해 애를 쓸 때

 

이번에 아버지가 아니고

이번에 어머니가 아닌 것

 

오해와 비밀

 

가만히 떠올려보면

나는 투명한 기억을

잊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오랜 노인처럼

단번에 흘러드는 기억을

잊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아주 천천히 풀리는

오해들

 

두 눈을 감고 기억하는

비밀 형태들

 

두 눈을 감고 기억하는 것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은

 

어느덧

모레와 글피와 그글피

 

비밀이 아직

비밀일 때

 

순간의 미래 속에서

어두운 희미함을 보는 것

 

나의 이야기 끝에

눈을 감는 것

 

0세처럼 작고 가볍고

따뜻해지는 것

 

세계와 착각

 

깊은 밤 생각해보면

나는 가벼운 기억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는 것 같아

 

가벼움을 따라 사라질 수 있다면

가벼움을 따라 돌아올 수 있다면

 

알전구를 깨서 

다른 세계를 말하지 않는다면

 

희미한 기억을 환한 빛으로

착각하기 시작하고